동궁과 월지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인왕동)
이용문의 : 054-750-8655
동궁과 월지 소개

문무왕 674년, 삼국을 통일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궁궐도 커지게 되어 신라 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남쪽에 신라 궁인 월성이 있어 이곳까지 자연스럽게 커진 것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를 볼 때 주목할 만한 것은,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신라인들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이며, 못 안에는 동양의 신선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섬 세 개와 열두 봉우리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 장치나 배수구 시설 또한 교묘하고 세심하다.

또한, 신라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기와류, 화려한 금속 공예품들도 주목할 만하지만, 나무배와 나무로 만든 각종 건축 부자재, 나무편을 얇게 깎아 글을 기록한 목간 등도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다. 이 곳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만 무려 3만여 점으로,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용품이 대부분인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어 단일 유적지인 안압지에서 얼마나 대량으로 유물이 출토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각들

첫 번째 전각 안에 전시된 모형은 현재 월성 서남쪽에 복원중인 월정교의 모습인데, 월정교는 통일신라의 전성기였던 경덕왕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궁궐 월성 남쪽에 있는 천을 건너던 다리이다.

안압지에는 현재 연못과 세 개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지만, 발굴 당시 이곳에서, 무려 스물여섯 곳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앞쪽에 보이는 주춧돌은 모두, 건물들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 복원된 세 개의 건물은 안압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안압지 안에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용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안압지를 발굴 할 때 발견 된 ‘심신용왕’ 이란 글씨가 새겨진 토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심신용왕이란,‘새로운 제물을 용왕께서 굽어 살펴 주소서'라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임해전으로 추정되고 있는 두 번째 전각은 당시 안압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모형과 연못을 발굴할 때 나온 유물들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어 크고 화려했던 안압지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연못 바닥에서는 무덤 등에서 출토되는 껴묻거리와 달리, 각종 토기와 특이한 기와, 나무로 만든 빗, 글씨가 쓰인 나뭇조각 등의 생활용품들이 많이 발굴되어 통일신라시대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선도 발견되었는데, 이 목선은 배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입수구

안압지 서쪽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가 있는데, 이곳에는 백제의 조경기술 녹아 있다. 백제는 일찍이 연못을 꾸미는 조경기술이 발달해 부여의‘궁남지'를 비롯해 많은 연못들을 만들었다.

안압지에도 백제의 조경기술이 접목되어 신라 속에 고구려, 백제의 문화가 녹아들면서 지금처럼 아름답고 과학적인 연못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압지의 물길이 시작되는 입수구는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인데, 북동쪽에 있는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서, 이 장치를 거쳐 안압지로 들어간다. 마치 거북이를 음각한 것 같은 두 개의 수조가 아래위로 위치해 있는데, 이런 구조는 물에 섞여 있는 자갈이나 모래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물은 수조를 지나 안압지 안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낙하지점에 판판한 돌을 깔아서, 바닥의 침식과 구정물이 생기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입수구 근처에 작은 인공 섬은 입수구를 통해 들어온 물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서, 연못의 침식을 막아주고 물이 자연스럽게 순환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못의 반대쪽에는 물을 배출하는 배수구가 있고 배수구에는 3개의 구멍이 세로로 나 있는데, 이 구멍에 나무마개를 끼워 수위를 조절했다. 이렇게, 안압지는 세심한 부분까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다.

주령구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하던 중, 연못 바닥의 진흙 속에서 '주령구'라는 나무로 만든 주사위가 발견되었는데, 아이 주먹크기 정도의 14면체 주사위로 참나무로 만들어진 이 주사위 위에는 각 면마다 재미난 벌칙들이 새겨져 있었다.

술 석잔을 한 번에 마시는 삼잔일거 (三盞一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벌칙으로 중인타비 (衆人打鼻), 노래 없이 춤추기 벌칙인 금성작무 (禁聲作舞) 등 각 14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는데 특히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과 풍류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주령구는 정다면체가 아니기 때문에 각 면이 나올 확률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목제 주령구를 이루고 있는 면의 넓이를 계산해 보면 정사각형 면이 육각형 면과 거의 같아서 각 면이 나올 확률은 거의 비슷한데 이런 주사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한편, 출토된 진품은 유물 보존 처리도중 불타 버렸고, 지금은 복제품만 남아있다.

안압지 출토 유물

유물은 와전류를 포함하여 3만 여 점이 나왔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부장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라 무덤의 출토품과는 달리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출토 유물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다. 단일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나무배 :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목간
  • 금동 초심지 가위
  • 금동삼존판불
  • 금동 봉황 장식
  • 금동비로자나불입상
  • 문고리 장식
  • 목제 주령구

※ 임해전지(안압지)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20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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